나신으로 피어나는 참제비고깔꽃

김금용 - 2023년 여름호

2025-02-26

 

 

 

 

나신으로 피어나는 참제비고깔꽃

 

 

김금용

 

 

 

검은 스니커즈 귀퉁이를 잘라냈어요

가위질 소리가 침묵을 깨웠죠

귀만 날카롭게 삼각형으로 불어나는

침조차 삼킬 수 없는 긴 정적

 

소름이 돋았어요

살갗마다 뿔을 달고 오글거리는 빛무더기

실핏줄이 파랗게 돋아나

뺨과 목줄기, 팔다리 사이로 철철 흘러내렸어요

춥고 시린 청보라빛 꽃잎들이

 

무대와 관객의 경계가 무너졌어요

어둠은 빛을 품고, 빛은 어둠을 안고 날개를 폈어요

 

날개 냄새가 시큼해요

전라로 뛰는 무용수의 땀으로 번뜩이는 등줄기,

감추지 않은 벌거벗은 몸일 뿐인데

조여드는 삶을 자르고 살색을 드러냈을 뿐인데

무장한 무용복에 묶였던 자유의 꽃씨가 일시에 터지면서

나신으로 뛰는 저들의 머리칼마다 참제비고깔꽃이 피네요

 

자유를 갈구하며 거리로 쏟아져나오던

프랑스 혁명가들이 썼던 고깔모자가 팔랑거리네요

꽃향기가 저들의 거친 입김을 따라 쏟아지네요

슬프든 기쁘든 공기를 밀어올리는

살냄새가 고깔모자가 눈물꽃을 피어올리네요

푸르른 바다를 닮아 경계 없이 푸르게 피어나네요

어둠을 뚫고 겁 없이 피어나네요,

참제비고깔꽃이,

 

 

 

 

 

 

 

김금용 시인

1997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광화문 쟈콥』 『넘치는 그늘』 『핏줄은 따스하다, 아프다』 중국어 번역시집 『문혁이 낳은 중국현대시』 『나의 시에게』 『오늘 그리고 내일今天與明天』이 있음.

 

 

 

 

AI 해설

 

 

「나신으로 피어나는 참제비고깔꽃」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질적 열망을 강렬한 이미지로 그려낸 시다. 검은 스니커즈를 잘라내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해방의 상징은, 무용수들이 옷을 벗고 나신으로 뛰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과정은 단순한 신체의 노출이 아니라, 억압과 규범을 벗어던진 자유의 선언으로 묘사된다. 참제비고깔꽃은 프랑스 혁명의 고깔모자와 겹쳐지며, 저항과 해방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다. 시인은 어둠과 빛, 억압과 자유가 충돌하는 순간을 통해,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자유에 대한 갈망을 역동적이고 감각적으로 풀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