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이경림 - 2023년 여름호

2025-02-26

 

 

 

 

기도

 

 

이경림

 

 

 

하느님!

목련이 화사하게 떨어지는 오후예요

 

우짜겠노

 

휠체어를 탄 젊은이가 거대한 쓰레기통 옆에서 격렬하게

담배를 피워대는 오후예요

 

우짜겠노

 

한 떼의 구름이 공중에 아방궁을 짓고 있는 오후예요

지나가는 바람이 찢어진 현수막을 또 찢는 오후예요

 

우짜겠노

 

찟찟 끄르 끄르

늙은 팽나무 속에서 새 한 마리가

울음으로 그물을 치는 오후예요

빨간 승용차가 경적을 울리며 요란하게 날아가는 오후예요

 

하느님,

이 악취는 어디서 날아오는 걸까요

냄새에 취해 퍼렇게 독오른 이파리들이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종양 같은 열매나 매달고 있어요

 

우짜겠노

 

아아, 하느님

제발 그렇게 하릴없이 대답하지 마세요

 

집 없는 고양이들은 밤새 울죠? 철없는 새들은 새벽부터 짹짹거리죠?

옥상 난간에는 수상한 것이 어른거리죠? 이따금 쿵! 떨어지죠?

그래도 앞집은 곰곰 닫혀 있죠? 아아 전후좌우 텅 빈 것들만

우글우글......

 

우짜겠노 우짜겠노

 

 

 

 

 

 

 

이경림 시인

1989년 <문학과비평> 등단. 시집 『급고독』 외 6권. 시 산문집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 산문집 『언제부턴가 우는 것을 잊어버렸다』 시론집 『사유의 깊이 관찰의 깊이』 영역시집 『A New Season Approaching, Devour it』가 있음

 

 

 

 

AI 해설

 

 

「기도」는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현실 속에서 던지는 화자의 절박한 외침을 담은 시다. 목련이 지는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도 휠체어를 탄 젊은이, 찢어진 현수막, 악취에 물든 자연 등 삶의 어둡고 고통스러운 단면들이 교차한다. 화자는 하느님께 끊임없이 "우짜겠노"라고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무심하거나 공허하다. 이는 세상의 부조리와 개인의 무력함을 절감하는 화자의 내면을 드러내며, 신에게조차 위로받지 못하는 인간의 외로움을 강조한다. 시는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 절박하게 도움을 구하지만, 끝내 해답을 얻지 못하는 고뇌를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