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천과 서시*
강희근 - 2023년 여름호
2025-02-26
압천과 서시*
강희근
교토의 도시샤대학 캠퍼스
나라 잃은 두 사나이의 시비가 있다
아시는가,
압천 십리벌에 해는 저물어
날이 날마다 님 보내기 목이 자졌다 여울물 소리
지금은 잔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들으시는가,
잎새에 이는 바람
별이 바람에 스치우는 소리
지금은 캠퍼스 교양관 창으로 찔리듯
들어오는 햇살에 씻개여
잔잔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붉은 벽돌 아담한 캠퍼스의 늙은 팽나무
그늘이 그늘을 물고 있다
두 사나이의 눈썹이 눈썹을 보고 있다
*지용과 동주
강희근 시인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연기 및 일기』『풍경보』『소문리를 지나며』『중산리 요즘』 『리디에에게로 가는 길』등이 있음. 김삿갓문학상, 조연현 문학상, 동국문학상 등 수상.
AI 해설
「압천과 서시」는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았던 두 시인, 정지용과 윤동주를 기리는 시다. 교토 도시샤대학 캠퍼스에 세워진 두 시인의 시비 앞에서, 화자는 이들이 남긴 시 구절을 통해 그들의 상처와 고뇌를 떠올린다. 정지용의 「압천」과 윤동주의 「서시」에 담긴 자연의 소리들은 더 이상 생생히 들리지 않지만, 여전히 그들의 존재를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늙은 팽나무 그늘 아래 마주하는 두 시인의 시선은, 같은 시대의 아픔과 고독을 공유하는 듯하다. 시는 세월이 흐른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시인들의 흔적과 그들의 깊은 내면을 담담히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