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그림자 공장
임요희 - 2023년 가을호
2025-02-26
거대한 그림자 공장
임요희
빛에 오래 널어두어도 바래지 않는다
바싹 말리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뚝딱뚝딱 치익 뚝
땅속 공장에서 들려오는 소리
황동 소성로에서는 바닥없는 어둠이
짜장처럼 익어가고
계절은 더위를 휘휘 저어 하나둘 뻐꾸기 알을 건지고 있다
마당에 솥째 엎어버리고 달아나는 해거름
얼룩덜룩 덜 완성된 그림자가 여름을 흔든다
내가 모르는 급한 일이 있었던 거라고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던 아버지
머리를 쓰다듬는 커다란 손
헐렁한 반지 속 허공이
달 깊은 우물에 수직 갱도를 뚫는다
고요한 폭발음과 함께 오래전 잃어버렸던 이름이
쿵 하고 떨어져 내린다
미싱은 빨간 꽃 노란 꽃 잘도 박는데
저녁의 기분은 붙들어 맬 데가 없어
무거운 몸을 꿈속까지 질질 끌고 내려오고
어머니는 가만히 일어나 그림자 자리를 반듯하게 편다
희미한 응달, 어른거리는 물그림자
숲의 어슴푸레한 빛깔
밤의 이불 속에 녹아 없어진다

2010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2023년 <시와 징후>에 시 게재하면서 시작 활동 시작. 여행 앱 ‘데이트립’의 큐레이터이자 일간지 ‘스카이데일리’ 기자. 지은 책으로 『눈쇼』 『리얼홍콩』(공저) 『버건디 여행사전』 『오늘도 무사히』 『지식키워드164』 등이 있음.
AI 해설
「거대한 그림자 공장」은 기억과 시간, 그리고 가족의 흔적을 감각적인 이미지로 풀어낸 시다. 어둠과 그림자는 단순한 빛의 부재가 아니라, 과거의 흔적과 사라진 것들을 상징하며, 아버지의 손길과 잃어버린 이름, 그리고 어머니의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깊은 정서를 형성한다. 땅속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그림자는 익숙한 일상 속에서 잊힌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는 과정을 암시하며, 시간이 흐르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흔적들을 보여준다. 미싱 소리와 밤의 고요함 속에서, 시인은 사라진 것들을 조용히 반듯하게 정리하며 삶의 여운을 남긴다. 시는 가족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섬세한 성찰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