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김상희 - 2023년 가을호
2025-02-26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
김상희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오래전 사라졌던 친구가 서 있었다
나를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녀 다운 웃음이었다
그녀는 일주일만 나와 함께 지내겠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이끌었다
회사가 끝나고 돌아오면
거실에서 자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바깥에서 들어온 찬 바람을 맞아
차가워진 볼에 손을 가져다 대면
그녀는 죽은 사람 같았다
나는 그녀를 깨우지 못했다
깨우면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까 봐
열심히 카레만 만들었다
어느 날은 그녀와 전시를 보러 갔다
전시관은 아름다웠다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는 통로의 천장이
통유리로 뚫려있었다
그곳으로 환한 빛이 쏟아지고
지나치는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요즘 사람들이 자꾸 없어진대
내가 그렇게 말하면
빛이 이렇게 좋은데
어디로 갔을까
그녀는 이렇게 답하고
함께하니 좋지?
그렇게 묻고 옆을 보면 아무도 없다
저기 전시관 밖으로 그녀가 나가는 것이 보인다
빛이 그녀를 비추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녀 다운 웃음을 생각했다
전시관은 아름다웠다
사랑과 희망이 넘쳤다
그래도 사라지는 사람이 있다
김상희 시인
2022년 <창비> 신인시인상 등단.
AI 해설
「사랑과 희망이 넘치는」은 상실과 기억, 그리고 존재의 덧없음을 조용하고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 시다. 오래전 사라졌던 친구가 찾아오지만, 그녀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듯하며 점점 희미해진다. 화자는 친구와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만, 결국 그녀는 전시관의 빛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전시관의 아름다움과 빛은 희망을 상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사라진다. 시는 삶과 죽음, 그리고 남겨진 자의 애틋한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떠난 이들에 대한 기억이 곁에 머물러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