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이식 잠

이도훈 - 2023년 가을호

2025-02-26

 

 

 

 

접이식 잠

 

이도훈

 

 

접이식 잠을 펴고 잠이 듭니다.

인간의 몸이란 참

접고 펴기 좋은 관계들입니다.

웅크리든 엎드리든 모로 눕든

모든 잠의 자세에 그날그날을 맞추는 겁니다.

잠은 접힌 곳마다 뒤척거리는 후렴이 있고

도돌이표가 끝나는 마지막에는

오줌이 마려 옵니다.

그것은 밤사이 흘렸어야 할 눈물이거나

불시착하려는 비행기가 버려야만 하는

가솔린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접힌 잠을 펴지 않으면 사인이 됩니다.

자세를 잃어버린 꿈은

고인의 마지막 굳은 풍경이 됩니다.

 

잠에서 깰 때마다

자던 모습을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헤어진 연인을 만난 것처럼 주섬주섬 자리를 피해갑니다.

접었던 잠을 펴는 데는

기지개만 한 것이 없습니다.

먼지 쌓인 이불을 털 듯 펄렁 펼치고

다시 영혼을 끌어당기듯 탁!

잡아들여야 합니다.

 

날마다 사용하는 자세가 수십 개나 됩니다.

평생 배워오고 잊혀지는 자세들입니다.

밤이 되기 전 또 하나를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렇게 접이식 잠에 맞춰 삽니다.

 

 

 

 

 

 

 

 

이도훈 시인

2020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맑은 날을 매다』 『봄날은 십 분 늦은 무늬를 갖고 있다』 가 있음. 2018년,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

 

 

 

 

AI 해설

 

 

「접이식 잠」은 잠이라는 일상의 행위를 통해 인간의 삶과 관계, 그리고 무의식 속 변화를 탐구하는 시다. 화자는 접고 펴는 몸의 움직임을 통해, 잠이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하루의 감정과 기억을 담아내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잠 속에서 반복되는 뒤척임과 도돌이표 같은 후렴은 미처 해소되지 못한 감정과 기억을 암시하며,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은 다시 현실로 복귀하는 의식적 행위로 묘사된다. 매일같이 익히고 잊어가는 다양한 잠의 자세들은 삶의 경험처럼 쌓이고 사라지며, 결국 인간은 그 흐름 속에서 "접이식 잠"에 맞춰 살아간다는 깨달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