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드라마

기혁 - 2023년 가을호

2025-02-26

 

 

 

멜로드라마

 

 

기혁

 

 

 

앞뒤가 맞지 않아도

흘러가는 이야기가 있다

 

질문의 새싹들을 짓밟으면서 꽃길만 만드는 맥락처럼

 

벌떼와 나비가 꽃가루를 잔뜩 묻힌 채

에브로스* 강가로 날아들 때

 

흐트러짐 없는 줄무늬의 교차가 마음을 이끈다

 

감정적인 죽음을 더 감정적으로 부추기는 연민 앞에서

수면에 비친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관객을 비춘다

 

혀끝에 닿지 않아도

한 움큼 소금을 뿌린 맹물의 맛처럼

 

강물은 자꾸만 거짓말을 내뱉는 것 같다

 

그리스 조각상을 닮은 정화와 순화의 표정으로

이유 없는 몸짓을 연기(演技)할 수 있을까?

 

매 순간 클라이맥스였던 가면 때문에

삼류극작가는 사건 없는 사건에 골몰한다

 

숨을 쉬고 시간이 흐르고 죽음이 찾아오는 객석에서

두둥실 떠내려온 부유물의 무동력처럼 운명에 몰두한

관객들이 흘러내리면

 

마침내 이름뿐인 고전주의자도 배역을 따낸다

강물이 강물에 대해 쓰려고 할 때 그는 이미 바다다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가

영웅의 배를 부수고 있다

 

 

* 오르페우스의 찢긴 몸과 리라가 떠내려온 강의 이름.

 

 

 

 

 

 

 

기혁 시인

2010년 <시인세계> 시 등단, 2013년 <세계일보> 평론 등단. 시집 『모스크바예술극장의 기립 박수』 『소피아 로렌의 시간』 『다음 창문에 가장 알맞은 말을 고르시오』가 있음. 제3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AI 해설

 

 

「멜로드라마」는 비극적인 사랑과 운명의 흐름을 강물과 연극에 빗대어 풀어낸 시다. 오르페우스의 신화적 요소를 차용해, 감정적으로 휘몰아치는 서사 속에서 현실과 허구가 뒤섞이는 모습을 그린다. 강물은 마치 이야기를 품은 듯 거짓말을 내뱉으며, 관객들은 운명에 이끌려 부유하듯 흘러간다. 모든 순간이 클라이맥스처럼 과장된 멜로드라마 속에서, 결국 인간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마지막에 이르면, 사랑과 운명의 소용돌이가 영웅조차 파괴하는 거대한 흐름이 되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