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렴

이화영 - 2023년 가을호

2025-02-26

 

 

 

 

토렴

 

 

이화영

 

 

 

  

펄펄 끓어오르는 훈김

 

아 눈이 내리네

 

날리는 수천의 흰 활자

파지에 찍힌 火印

 

백지는 복사꽃처럼 다정하고

복사꽃은 웬일인지 이별도 잘한다

 

복사뼈는 복사꽃이 진 뒤 보이는 당신

뜨거운 국물의 도전을 받아든 수천의 파지에서 당신을 보았다

 

봄도 가고

국물은 여전히 뜨겁고

시간의 기억은 빛처럼 가득한데

 

삼천갑자동방삭은 우주를 짓고 허무는 맹랑한 이야기

복사꽃 기괴한 가지를 오래 기억하였다

 

허공으로 뻗어나간 뿌리

하늘에 천천히 피 흘리며

콘크리트 겨울 네거리에 얼어 붙어있다

 

꽃이 지기를

늙은 여자의 가련한 종착역을 들었으니

 

매 순간

썩어 문드러져 나온 환한 결실들

 

복사꽃 사이에 당신이 하얗게 서 있다

 

 

 

 

 

 


이화영 시인

2009년 <정신과표현> 등단. 시집 『침향』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악보』 등이 있음.

 

 

 

 

AI 해설

 

 

「토렴」은 뜨거운 국물과 복사꽃의 이미지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이별, 그리고 덧없는 기억을 담아낸 시다. 펄펄 끓는 훈김 속에서 흩날리는 흰 활자는, 마치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존재들을 떠올리게 한다. 복사꽃은 다정하면서도 쉽게 지는 존재로 묘사되며, 국물 속 파지에서 보이는 "당신"은 사라져버린 기억 속 인연을 상징한다. 결국, 시간은 계속 흐르고 계절이 지나도 남은 것은 허공으로 뻗어나간 뿌리처럼 얼어붙은 흔적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복사꽃 사이에 하얗게 서 있는 당신"은 떠나간 이들의 잔상을 담담히 마주하는 화자의 내면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