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들
유현아 - 2023년 가을호
2025-02-26
질문들
-당신의 근황에 관해 알고 싶었다
유현아
기다리는 차례는 돌아오지 않고
줄 서는 사람들만 늘어간다
오후 네 시 언덕 사이 골목은
빠져나가려는 엉킨 발걸음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쳐 둥그렇게 말리고
골목을 지탱하던 소식들은 축축한 습기로
점점 부풀어 오른다
어차피 발은 투명하게 사라져간다고 자신하고 있다
신을 수 없는 구두를 포함해 쌓여가는 더미들이
골목의 입구를 메우고 있다
통과할 수 없는 틈에는 이끼가 자라고 있다
나답게 존재하는 이름들이 습하게 스며들고 있다
화려한 말솜씨를 자랑하던 편의점 옆 전직 군인은
군화 한 짝을 버리지 못해 재떨이로 사용하고 있는 시간
둥그렇게 말린 사람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다
이끼가 자라던 틈을 파내자
구멍이 생기고
사람들은 차례로
구멍으로 들어가고 있다
둥근 사람이 되지 못한
우리들은 공백을 참지 못해
또 다른 틈의
이끼를 보고 있다
돌아오지 않는 차례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퍼지고 있다
다른 수수한 이끼는 자손을 퍼뜨려 줄 바람을 기다리고*
그날 당신의 근황에 관해 알고 싶었다
* 로빈 월 키머러 『이끼와 함께』
유현아 시인
2006년 제15회 전태일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 시집『아무나 회사원, 그밖에 여러분』『주눅이 사라지는 방법』『슬픔은 겨우 손톱만큼의 조각』미술에세이『여기에 있었지』가 있음. 제4회 조영관 창작기금, 제21회 아름다운 작가상 수상.
AI 해설
「질문들 - 당신의 근황에 관해 알고 싶었다」는 기다림과 소통의 부재, 그리고 점점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다. 끝없이 늘어나는 대기 줄과 빠져나가려는 발걸음들은 소식이 끊긴 채 정체된 시간과 공간을 암시한다. 화자는 기다리다 지쳐 둥글게 말려버린 사람들, 신을 수 없는 구두 더미, 이끼가 스며든 틈을 통해 소통이 단절된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결국 사람들은 이끼가 자라는 틈을 파내며 사라지는 듯하고, 둥글게 말리지 못한 자들은 또 다른 틈을 바라보며 기다림을 이어간다. "그날 당신의 근황에 관해 알고 싶었다"는 마지막 문장은, 결국 도달하지 못한 질문과 사라져버린 대답을 남기며 공허한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