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를 건너왔다
문현미 - 2023년 가을호
2025-02-28
빙하기를 건너왔다
-서대문형무소
문현미
사는 게 빙산이었다가, 떠도는 유빙이었다가
검푸른 바닷속이었다가, 해저의 캄캄한 바닥이었다가
수시로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의 긴 혓바닥 같은
언제, 어떻게 덮칠지 모르는 짐승의 발톱 같은
불안과 공포가 찌륵찌륵 울음을 퍼뜨렸다
그곳은 미치도록 슬픈 빙하기
죄 없는 죄수들이 빼앗긴 계절의 감옥에서
모든 겨우살이를 버티고 있었다
사라진 봄, 가을의 끝자락을 지나
겨울보다 더 지독한 계절의 한가운데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짓밟고, 할퀴고, 물어뜯던 하이에나들의
먹이 사냥은 멈추지 않았다
시구문으로 쥐도 새도 모르게
버려지는 차디찬 주검들의 긴 행렬
한 줄기 바람도, 한 톨의 햇살도
숨죽이고 지켜볼 뿐
살아도 산 자가 아닌 그들은 다만
계절 너머의 그날을 생각하며
유린에 맞서 목숨을 방패로 막아내려 했다
단단한 은빛 정신의 산정 아래
뜨겁게 불타올랐던 불, 불의 깃발 붙들고
끝없는 무진장으로 건넜다, 길고 긴 빙하기를
문현미 시인
1998년 계간 <시와 시학> 등단. 시집『가산리 희망발전소로 오세요』『바람의 뼈로 현을 켜다』『사랑이 돌아오는 시간』『시를 사랑하는 동안 별은 빛나고』(칼럼집) 등. 박인환문학상, 난설헌시문학상, 풀꽃문학상 등 수상.
AI 해설
이 시는 서대문형무소에서 고통받았던 독립운동가들과 억울하게 갇힌 이들의 처절한 삶을 빙하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자유를 빼앗긴 그들은 혹독한 계절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습니다. 잔인한 탄압과 학대가 계속되었고, 많은 이들이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들의 희생은 조용히 묻혀갔습니다. 바람조차 숨죽인 채 지켜보는 어둠 속에서도, 그들은 미래를 꿈꾸며 끝까지 맞섰습니다. 차가운 감옥에서도 정신만은 꺾이지 않았고, 뜨거운 신념을 품은 채 마침내 긴 빙하기를 건너 자유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이 시는 그들의 고통과 저항, 그리고 희망을 강렬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