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는 통화 중

강신애 - 2023년 가을호

2025-02-28

 

 

 

 

기사는 통화 중

 

 

강신애

 

 

 

이 길은 어떤 지질학적 시간으로 이어져 있다

기사는 귀에 리시버를 꽂는다

 

액정 속 모항과 채석강 해식동굴은

비끼는 광선 아래 조금씩 얼어가고 있다

 

아저씨 에어컨 좀,

고른 차선처럼 이어지는 객담에 취해

기사는 천안 지나 청산유수로 흘러가고 있다

 

휴게실까지는 아직 15킬로

이 차가 멈출 때까지 서리를 뒤집어쓰고 있어야 한다

 

종아리가 시리다, 흔들릴 때마다

커튼에서 툭툭 고드름이 부러져 넓적다리를 찌른다

 

기사는 대화를 그만둘 마음이 없어 보인다

검은 벨트에 묶여 침묵하는 사람들

 

아저씨 휴게실 좀,

두터운 창을 긁어내다가

투명 속에 저장된 목소리가 외쳤지만

 

그의 귀는 둥글게 말려

변산 하섬 노을이 두 조각나는 방향으로 올곧게 달려간다

 

금계국이 출렁이고 초록이 불타는 고속도로

 

극명한 온도차가 존재하는 세상을 잠시 잊고

기사는 저만의 속도로 여행 중이어서

 

 

 

 

 

 

 

 

강신애 시인

1996년 <문학사상> 등단. 시집『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 『불타는 기린』 『당신을 꺼내도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물가에 집을 지을까』가 있음.

 

 

 

 

AI 해설

 

 

이 시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느껴지는 극명한 온도 차와 단절된 소통을 묘사합니다. 창밖에는 따뜻한 풍경이 펼쳐지지만, 차 안은 서리로 뒤덮여 추위와 고독이 감돕니다. 기사는 통화에 몰두한 채 승객들의 요청을 무심히 흘려보내며, 그들과 단절된 채 자신만의 속도로 달려갑니다. 승객들은 차가운 공간 속에 갇혀 침묵하고, 시인은 그 답답함과 소외감을 온도의 대비로 표현합니다. 결국, 각자가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세상의 단절과 고독을 담아낸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