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마기고모네 초록빛 식탁

강은교 - 2023년 가을호

2025-02-28

 

 

 
 

 

 

 

당고마기고모네 초록빛 식탁

 

 

강은교

 

 

 

어느 날 베란다 창고에서 튀어나온 당고마기고모네 초록빛 식탁, 태아 같은 비취구슬 매달린 당고마기고모네 초록빛 식탁, 거기엔 실오라기 같은 벗은 잠들이 가득 앉아 있다가 뛰어 일어선다, 창고 앞 노을은 언제나 잿빛 페인트 씌운 시멘트 벽을 업고 업고, 고모, 고모, 당고마기고모*, 건너간다, 떠돈다, 별 찢어진 조각 안는다, 성큼성큼성큼 잿빛 시멘트 벽에 입맞추는 고모,

 

그 암흑을 열어주오, 열쇠를 잃어버린 그 암흑을, 오구두루이  오구두루이

 

구불구불했어, 내가 걸은 이 길, 이제 너무 많이 올라와 버렸어, 내려가기엔 너무 먼 저 아래 길, 항상 길 끝에 서 있었지, 당신을 기다리며 기다리며, 떨리는 암흑에 기대곤 했어.

 

먼 산으로 가는 풀떼들,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도 솟아나는 풀떼들, 나도 나도 여럿 사이에 끼어 여럿이 되 니, 여럿이 된 내가 산을 오르니. 빨래하는 여인들을 따라 나도 나의 죄를 씻으니, 꿈을 버린 죄, 영원과 헤어 진 죄, 소멸을 버린 죄,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중얼중얼,

 

내 탓이 된 버스들이 지나간다. 내 탓이 된 길들이 지나간다. 허리 굽은 길들도 지나간다. 창고 지붕에서 튀어나온 검은 길들이 나선의 계단을 오른다. 아마 그 끝에는 당신이 서 있지 않으리, 중얼중얼, 제 탓이로소이다, 제 탓이로소이다, 제 탓은 애달픈 창문에게 인사하나이다, 내 방을 고해소로 만드는 당신, 매일 우리는 죽어나가고, 죽은 이들은 가루가 되어 도자기 항아리에 웃는 얼굴로 넣어지고 우리는 경배한다, 당고마기고모, 우리는 경배한다,

 

당고마기고모네 초록빛 식탁, 당신은 신, 무한 길들이 숨은 신이며, 무한 희망들이 진흙덩이처럼 달라 붙은, 안녕  안녕, 무한 길들이 떠도는, 길들을 들쳐업고 업고 인사하는 고모, 당고마기고모,

 

어느 날 베란다 암흑창고에서 튀어나온 당고마기고모의 초록빛 식탁, 길을 잃는다는 건 길을 얻는다는 것, 길이 없다는 건 시작과 끝은 하나라는 것, 당고마기고모의 초록빛 식탁, 초록빛 둥근 잠, 초록빛 둥근 꿈, 노을은 언제나 인조 대리석 층계 업고 업고, 오구두루이  오구두루이

 

 

 

* 우리는 그녀를 가끔 당고마기고모라고 불렀다.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고모가 살던 곳의 이름을 붙였던 것인지......그때 어머니한테서 자주 들었던, 엣이야기의 여인 같아서 붙여진 별명이었던 것인지......(아마 그렇겠지)......아무튼 당고마기고모는 키가 컸고 광대뼈가 나왔으며 살빛이 검었고 반면 입술은 맨드라미 빛이었으며 무엇이든 척척 했다. 여신처럼.

 

 

 

 

 

 

 

 

강은교 시인

1968년 <사상계> 등단. 시집『허무집』『풀잎』『빈자일기』『소리집』『벽 속의 편지』『초록거미의 사랑』『네가 떠난후 너를 얻었다』『바리연가집』『다시봄-벽 속의 편지』『아직도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등 다수. 시산문집『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무명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등이 있음 .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박두진문학상, 구상문학상 등 다수

 

 

 

 

AI 해설

 

 

이 시는 ‘당고마기고모’라는 인물과 그녀의 초록빛 식탁을 중심으로 기억과 시간, 상실과 희망을 몽환적으로 그려냅니다. 고모는 마치 신화 속 인물처럼 강인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묘사되며, 그녀의 식탁은 삶과 죽음, 떠돎과 정착이 뒤섞인 공간이 됩니다. 시인은 길을 잃고 헤매는 가운데, 결국 길을 찾는 과정이 곧 새로운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반복되는 중얼거림과 기도 같은 문장은 죄책감과 회한, 그리고 경배의 감정을 더욱 강조합니다. 전체적으로 시간과 공간이 얽힌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삶의 순환과 존재의 의미를 탐색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