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다>
오세영 시인
26-07-03 15:13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다
오세영 시집
★책 소개★
하나 보태기 하나가 둘이 된다는 것만을 진실이라고 말하지 마라. 그같은 진실은 오직 삶을 편안하게, 안락하게 영위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필요한 진실일 뿐이다. 보다 중요하고 보다 근본적인 것은 이 논리적, 과학적 진실을 벗어난 곳에 있는, 한마디로 모순에 토대한 진실, 그러니까 간단히 모순의 진실이다. 이 생은 과학적 진실이 아닌 바로 사랑과 같은 모순의 진실이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시라고 부른다.
- 「잡념雜念의 시학」에서
★시인의 말★
그러므로 미네르바의 올빼미여,
이제는 활짝
두 날개를 펴시라.
세상이,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다.
- 오세영 시인
◨ 책속에서
책 속에서
시는 영혼의 술,
술은 육신의 시,
높이 들어라 술잔!
우리는 누구나 한 번쯤 푸른 하늘을
날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마시자.
취하자.
우리들
자유로운 영혼이여.
- 「건배乾杯」 전문
한국어 ‘시인’이라는 말에는
모음 ‘ㅣ’가 두 개나 있다.
영어에도 불어, 중국어에도, 아니
세계 그 어느 외국어에도 없는 우리 말
단어가 아니냐.
‘ㅣ’는
하나를 뜻하는 숫자이기도 하지만
똑바로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글자.
그래서 지혜로운 우리의 세종대왕께서는
훈민정음을 지으시며
땅은 ‘ㅡ’, 하늘은 ‘.’,
‘ㅣ’는 인간이라 하셨느니.
이외 이 지상에서
직립直立해 하늘을 우러르는 동물이 어디
있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한국의 시인들이여.
시방 세상이 어두워지고 있다.
자칭 인간도 막된 동물도 모두 한 통속이 되어
꿀꿀거리며
땅의 먹잇감에만 온통 눈독을 들이고 있나니
그대만이라도 ‘ㅣ’처럼
이 지상에 홀로 우뚝 두발로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모음 ‘ㅣ’」 전문
인연과 인연이 실처럼 얽히고 설켜
윤회하는 중생이라고들 하더라만
인간은 또 누구나
언어와 언어로 연결되고 묶여진
사회적 존재가 아니더냐.
그런데
대낮에도 환하게 램프를 켜든
장미꽃을 보아라. 아니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고
쿵쾅거리는 심장의 발전發電 소리를 들어보아라.
산다는 것은 각자 서로 주고 받으며
자신들의 머리와 머리에 밝은 등불 하나씩
밝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언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일말의
전류.
내 노년 들어 청력이 약해지니
주위에서 자꾸
귀가 어둡다고 구박들을 하더라만
그 전선에 걸린 불빛,
점차 약해지는 전압에 깜빡깜빡 수그러드는 것을
난들 어찌할 수 있으랴.
「어둡다는 것」 전문
오세영
1965~68년 『현대문학』 등단하였으며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등을 수상하였으며 시집으로는 『시간의 뗏목』, 『봄은 전쟁처럼』, 『문 열어라 하늘아』, 『바람의 그림자』, 『갈필渴筆의 서書』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