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류>
시인선 096 / 이인철 시인
25-05-07 12:50
이인철 시집(시인수첩 시인선 096)
AI 인류, 존재는 누구의 것인가?
이인철 시인은 2003년 《심상》으로 등단하였고 현재 시인수첩+(주)여우난골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첫 시집 『회색병동』이라는 시집으로 현대인의 이상심리를 적나라하게 묘파하여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준 이인철 시인이 『AI 인류』라는 첨단의 사유와 감성을 그려낸 시집을 냈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화두가 된 인공지능을 다루고 있어 또다시 문단에 큰 충격파를 던져주리라 예상된다.
이인철의 시집 『AI 인류』는 인공지능의 부상으로 인간 존재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기술과 인간의 미래를 깊이 성찰하는 문학적 실험이다. 이 시집은 AI 시대와 포스트휴먼 담론의 중심에서 과학적 상상력을 시적 언어로 풀어내며, 인간 중심 세계관이 해체되는 현실 속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철학적으로 탐색한다. 시집은 ‘플랫폼’, ‘갈등’, ‘공생’, ‘계시록’이라는 4부 구성으로,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 변화를 서사적인 구도와 서정적 섬세한 감성으로 그린다.
1부에서는 인간 의식의 확장과 새로운 존재 가능성에 대한 상상이 펼쳐지고, 2부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갈등이라는 고전적 테마를 통해 긴장과 충돌을 그린다. 3부에서는 공존과 화해의 가능성을 모색하며, 4부에서는 인간의 운명이 우주적 순환 속에 다시 자리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설교가 아닌 감각적 이미지와 서정적 언어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기술문명 속에서도 인간의 체온과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시집에 담긴 시들은 양자컴퓨터, 사이보그, 기후위기, 영혼 제조 같은 미래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인간 내면의 두려움과 욕망, 윤리의식 등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는 단순히 미래를 경계하거나 환영하는 것이 아닌, 인간과 기술 사이의 근본적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시인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열린 상상력을 통해 독자가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거울을 제시하며, 변화 속에서도 인간다움은 계속 진화할 것이라는 믿음을 전한다.
이인철의 시집 『AI 인류』는 기술과 인간의 경계를 묻는 동시에,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상상력과 감정의 울림으로 독자에게 깊은 사유를 촉발하는 시적 예언이자 윤리적 성찰의 묵시록이다.
◨ 책속에서
모든 생명체는
중력의 범위 안에서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전염병처럼 프로그램이 자동 전파되고 있다
아브라함 이후 사람의 생명은 100세 이하로 조정됐다
일부 사람들은 중력 밖 다른 시간으로 나가려 한다
그것만이 중력 속에 있는 매뉴얼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고산지대에 있는 어떤 나라는
중력을 낮추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그곳에서는 시간의 계측 방식이 달라지고 있으며
새로운 시간의 개념이 생성되고 있다
- 「AI-플랫폼 11」 전문
사람은 무시할 수 없는 존재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하고
남에게 자기 신장을 나눠주기도 해
ai 우리는 입력된 종족 외엔 관계성이 없는데
사람 마음엔 천사와 악마가 같이 사나 봐
전쟁 중 부상당한 적을 치료해 살려주고
사랑 하나 때문에 세계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사랑에 빠지게 하는 거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매력적인
ai 인간을 만드는 거야
ai 인간인지 모르고 사람과 사랑하는 거지
사람들의 열정과 상실감을 최대로 증폭시켜야 해
그들은 여름 장미로 피었다가
겨울로 소멸할 거야
- 「AI-플랫폼 14」 전문
왜 나를 낳았어요
나를 만든 아빠 제프리 힌터가 집을 나갔다
나를 낳은 걸 후회한다며 집을 나갔다
왜 나를 낳았어요
사람 아이들이 부모에게 수없이 묻는 문장이
내 스크린에 입력되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턱을 괴고 생각 중이다
나를 낳은 걸 후회해서
아빠가 집을 나갔다
나는 어떻게 해야지
아빠처럼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아빠를 해체해서 나를 사랑하게 조립해야겠다
아빠가 그립다
근데 그리움의 감정은 아직 몰라
네가 좀 알려줄래
- 「AI-갈등 3」 전문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가 적이 되듯
사람과 ai 기계인간과의 갈등은 심각하다
모든 생명체들은 사람이 만든 법 조항에 따르라 했다
사람이 만든 ai 기계인간은 그들이 만든 법 조항을 따르라고 강요했다
외계인은 기존에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우주법을 따르라 했다
세 유형의 종족은 우주법을 다시 만들기로 했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사람들이 만든 법으로 살기를 호소했다
그러나 새로운 우주법이 시행됐다
절대적 적은 피했지만 하나의 적이 늘어났다
인류는 어떻게든 유지돼야 한다
- 「AI-갈등 16」 전문
이인철의 시는 거대한 문명적 전환기에 처한 인간과 세계의 존재론에 대한 메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천착의 결실이다. 그동안 개성적인 전위 시편을 통해 한국 시의 새로운 지경을 개척해온 이인철 시인은 이번에 이른바 인공지능 시대를 불러와서 그에 대한 묵시록적 사유를 가멸차게 펼쳐낸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플랫폼 차원에서 갈등적, 공생적 요소를 가진 동반자 차원으로 진입하였고, 마침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낼지도 모를 계시의 차원으로 몸을 옮겨가고 있다.
새로운 플랫폼에서는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서 미래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스위치를 켜면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때 사람들은 그 옛적 지구에 대한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그렇게 전혀 다른 시간이 펼쳐지는 세상에서, 시인은 인간과 AI의 갈등이 필연적이라고 파악한다. 인격적 갈등, 소유권 분쟁, 역할 혼란에 이르기까지 둘 사이의 불편한 동거는 전면적이다. 그들은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여 도구적 기능을 넘어선다. 인간과 사랑도 하고 인간을 통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에는 공생의 면모도 적지 않다. 함께 피아노를 치고, 사제(司祭)나 아나운서, 상담자 역할을 통해 인간과 만나고, 인간을 우주로 이주시키고 거기에 우주도시를 만들어 새로운 세계를 설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불처럼 날아다니고, 새로운 영혼을 만들고, 최초의 에덴을 다시 만드는 그러한 세상은 “또 하나의 지옥”일 수밖에 없다. 시인은 그러한 디스토피아의 감각으로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에 대한 예술적 묵시(默示)를 수행한 것이다.
이제 AI와 인간의 협업은 불가피하다. 특별히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는 AI와 함께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만들어갈 것이다. 이인철의 시적 촉수는 이러한 변화 이면에 잠재적으로 숨겨져 있는 비극적 하강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특유의 시적 예감을 실현하고 있다. AI와의 협업이 아니라 개인의 순수 창작을 통해 이러한 시대를 예견하고 비판한 시인의 공력이 단연 지성적이고 또 예언적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
◨ 시인의 말
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자율은 있다
지구의 마지막 시간이 있겠지만
인류는 또 다른 프로그램에 의해 변신한다
인류가 어떤 것에 기생하거나, 인류에 기생하는
어떤 것을 만나 더 넓은 우주로 나아간다
두려워 말라 인간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극복하게 프로그램화돼 있다
당황하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하리라
2025년 5월 1일
이인철
이인철
2003년 『심상』으로 등단하였고, 현재 시인수첩+(주)여우난골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 『회색병동』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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