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증상>

시인선 094 / 함태숙 시인

25-03-27 21:56

 

 

 

함태숙 시집(시인수첩 시인선 094)

 

앤디andy, 복제 인간의 실존적 초월

 

“우린 미학적으로 싸우는 거 같아”

함태숙, 「스틸링」 중에서

 

2002년 《현대시》로 등단한 함태숙 시인이 시집, 『나비 증상』이 시인수첩 시인선 94번으로 출간되었다. 총 5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등단 이후 문학을 철학, 심리학, 임상의학 등의 첨예한 사유들과 접목하면서 꾸준히 작품 활동을 펼쳐온 시인이 우리 시대의 쟁점으로 등장한 복제 인간의 실존과 그 초월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세계관을 축조했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이 남다르다.

무엇보다 이러한 독특한 세계 인식이 가능한 것은 시인이 존재를 그 기원에 속박된 일종의 압화된 함의로 간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증식하고 확장하는, 형태 없음의 비(非)-존재로 열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인에게 존재란 사후적이다. 그래서 “책은 하나의 사건이다”(시인의 말)라는 과감한 도약과 선언을 통해 ‘예술’을 진리의 지평을 여는 중요한 열쇠라고 강조한다.

당연하지만 ‘사후성’의 핵심은 사태의 끝없는 변화에 있다. 시인은 이를 염두에 둔 듯,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작품 하나하나에는 “쓰는 당시는 그 날의 날씨와 신문지면, 지나가는 타자의 대화들, 꿈속의 장면들, 출처를 알 수 없이 튀어나오는 기억과 풍경, 생각들, 아주 많은 잡동사니들이 떠다니는 무의식의 물탱크에서 건져지는 우연한 단어들이 자기들끼리의 끌어당김과 끊어내림의 파티를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시인도 예외는 아니다. 자신조차 그 사건의 더미들에 낀 ‘애벌레’, 혹은 ‘체액’이나 ‘무늬’이니 얼마든지 이탈자가 될 수 있다.

때문에 시인은 본격적인 의미 작용(혹은 이해와 해석)이 ‘증상’ 내지는 일종의 ‘징후’를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한다. “기억은 물고기처럼 / 자기 생태계를 창조하며 미래의 시제에서 기다”(「해변의 케이크」)린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수많은 증상-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다. 가령, 「나비 증상」에서 그는 “비유에 잡히지 않으려고 존재는/ 떨고 있다 물과 빛과 응시에 반응하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가 하나의 심장/ 자기를 꺾으려 올라오는 나르시스의/ 꽃처럼 깊고 축축하고 입술처럼 포개진/ 언어를 달고 있다 그의 오래된 증상들을”이라고 쓰는데, 퇴적된 안개를 걷어내고 실존 그 자체로서의 ‘증상’을 발현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우리는

쓰러집니다 굴러갑니다 축적됩니다

답하지 않아도

홀로 일어서는 빛처럼 눈꺼풀 사이 환영처럼

― 「신기루 같아」 부분

 

증상은 철저하게 감각의 영역에 노출된다. 그것은 신기루처럼 보일지 몰라도 쓰러지고 굴러가며 축적된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아도 “홀로 일어서는 빛처럼 눈꺼풀 사이 환영”과도 같다. 마치 “얼마나 걸어왔는지…하서회랑을…가장 빠른 은빛 날개로…손발을…/ 끊고… 기계 심장으로 …이별의…합의를…”(「둔황객잔」)에서 연출한 말 줄임표가 오히려 겹겹이 쌓인 이미지들을 직설한다는 것.

이러한 상황은 「킴벌리 소년」에도 집중된다. “열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이 썩어가네요/ 뭉개지네요 세계는 달의 환처럼 길을 둘들 말아 올리고 흐릿하게 밤의 평면을 갖습니다 모든 장소에서 도달하는 한 줌의 기억처럼// 배선에 물줄기를 이어 옵니다 길고 긴 눈동자에서 끊임없이 물줄기를 대어주네요/ 열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 위로 흐르는 무성의 노래네요 가늘게 이어지는 거친 슬픔이네요 다 흐르고 섬유질만 남은 몸이란// 여기 폭력을 가해서 변형되는 형질이 있다면 몽글거리며 오르는 하얀 피처럼 극약을 삼킨 빛처럼 마비된 채 굳어가는 하얀 동작들 하얀 가위 아래 분절되는 언어처럼”이라며,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의 조커 ‘애쉬’(Ash)나 ‘비숍’(Bishop), ‘콜’(Call), ‘데이빗’(David) 등의 복제인간을 ‘소년’에게 대칭하면서 증상을 징후로 확장한다.

또한 「허공의 훈련병」과 「캔버스를 뚫고 나가는 그녀」에서는 이를 좀 더 섬세하게 다루는데, 전자의 경우 “우리는 머리 대신/ 다족류로 우리를 묶고 음악을 보여주듯이 하나의 길을 연주하고/ 금관과 타악을 울리며 멸종한 종들이 따라 나오는/ 우리는 부드럽고 거대한 돛과 무력한 은빛 튜브를 달고/ (중략)/ 작은 하나의 입김에도 끝없이 걸어가는/ 너의 완전 군장 속에는/ 신이 의탁한 것들이// 오직 너는 순명하고 검은 해변을 토하고 너는 무수한 발 속에”라고 쓰거나 후자의 경우 “형상에 지지해 줄 많은 손들이 실패를 반복해 줄 투명한 중독들이// 거친 동굴의 /섬유질처럼 //형태를 잡고 있습니다 소재는 중요합니다 가연성인지 형상 합금 신 미래인지/ 표면에 반영된 시선의 정면성을 옹호합니다// 외부를 만드느라/ 입술이 뾰족해지는 비분절적 질문들”이라 쓰면서 그 징후조차 사건-이미지로써 경계를 넓힌다. 이외에도 「너의 이름은」에서 한층 뚜렷해지는 존재-들의 섞임, 곧 “우리는 울기 위해 기울어지는 신체 흙 속의 구근처럼// 두근거림을 넣어주려고 심장의 형태로// 끊기지 않는 사슬을 이으며 강은 모든 밤을 끌어와 흐르고 인류는 눈꺼풀 속에 너의 꿈을 헹구고 죽은 채로 태어나는 빛 그러므로 그림자가 없는 영원의 정오가 헤엄치며 다가”온다며 상황을 역설한다.

 

막이 오르고 연극이 시작된다 무대는 얼어붙은 거리 달이 흐느끼고 바람은 2월의 형상이다 그것은 다시 표면을 얼어붙은 물고기 등처럼 만들고 대본은 구겨진 채 굴러다닌다 폐가 굳은 돌멩이들처럼 세계가 출현한다

 

인물은 내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느라 관점이 자꾸 부서지고 막 뒤에서 역할을 바꿔가며 등장하곤 했다 한 줄로 지나가지 않으면 하나의 무대라는 걸 모를 정도로

 

그러나 이 공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기가 만든 세트장에 등장하는 신처럼 겨울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눈송이들

꽃받침처럼 부드럽고 희게 공중에 떠서 어떤 감정에 몰두하느라 흰빛을 다 써버린

― 「2월 20일」 부분

 

만일 사후성이 존재의 실존을 확인하는 무게추라면 시인의 사유와 작업은 막강한 정당성을 갖게 된다. 연극이 시작된다. 무대는 아직 혹한이 맹렬히 남은 2월의 얼어붙은 거리다. 유난히 가깝게 내려온 달은 창백하다 못해 흐느끼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꽝꽝 언 물고기처럼 길바닥은 흰 백태가 껴 있다. 사물의 그림자조차 을씨년스러운 거리에는 무슨 이유인지 대본이 구겨진 채 굴러다닌다. 이윽고 출현하는 세계―인물들은 스토리를 따라가느라 관점이 자꾸 부서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대본이 적시하는 상황이 아닌,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내적 스토리’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활에서 수많은 페르소나를 갖고 있듯, 배우들도 수시로 역할을 바꿔가며 등장한다. 주어와 서술어는 계속 끊어졌다. 그러다 이 무질서를 덮으려는 듯 눈이 내린다. 무대의 한 곳이 갑자기 열리고 인물들은 순간 정지했다가 자신의 일에 다시 몰두한다. 신의 형상이, 신으로 간주되는 무엇인가가 나타났지만 그는 “꽃받침처럼 부드럽고 희게 공중에 떠서 어떤 감정에 몰두하느라 흰빛을 다 써버린” 후다. 신이 그 의지를 모조리 소진했으므로 남은 것은 등장인물들의 움직임뿐이다. 물론 신은 우리 인간을, 또한 배우들은 우리를 복제한 앤디를 대칭한다.

 

 

★★

 

 

다음은 시집에 관하여 시인과 나눈 짧은 인터뷰 내용이다.

 

[Q] 주제와 이야기의 방향은? 

 

[A] 시를 쓰게 되는 어떤 내적 계기와 그 순간의 외부적 사태가 어떻게 결합하여 하나의 형태를 드러내는지 처음부터 준비하거나 의도한 바가 없으므로, 시집을 관통하는 주제를 문장화하기 어려움을 느낍니다. 가능한 한, 그 순간의 어떤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시인을 관통해 주기를 바라며 혼돈을 잃지 않으려 감각을 붙들고 있었다는 것을 주제에 근접한 사유라고 말해도 좋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작품의 방향도 가능하면 목차를 따라 시가 다음 편으로 자기를 밀어버리는 (툭툭, 끊어진) 연속성을 바랐다고 사후적인 추정을 해 봅니다.

 

[Q] 이번 시집의 특징은? 

 

[A] 매 편들이 어떤 이미지와 질문을 갖고 있을지 저도 궁금해 하며 읽어보려 합니다. 쓰는 당시는 그 날의 날씨와 신문지면, 지나가는 타자의 대화들, 꿈속의 장면들, 출처를 알 수 없이 튀어나오는 기억과 풍경, 생각들, 아주 많은 잡동사니들이 떠다니는 무의식의 물탱크에서 건져지는 우연한 단어들이 자기들끼리의 끌어당김과 끊어내림의 파티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속에서 어떤 영혼성이 개별적인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으리라 고대합니다. 언어를 가지고 언어 이전의 질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시를 읽는 자를 극미하게라도 감염시키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이번 시집은 그러한 욕망의 증폭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Q] 나는 어떤 시인인가? 

 

[A] 시를 쓸 때는 작품으로부터 거의 배제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시인임을 밝힐 때의 부끄러움과 죄책감이 있습니다. 저로부터 분리된 어떤 우발적 존재가 저를 사용해서 저를 휘저으며 자기를 드러냈다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리스 어느 벽화에서 출토된 뒷모습의 여성이 문득 떠오릅니다. 시집의 페이지를 넘긴다는 것은 벽 속으로 들어가는 누군가의 뒷 머리채와 옷자락의 사라지는 주름을 잠시 감각하다 금방, 다음 작품(이란 여성의 정면)에 포획되었다 다시 벽 속에 시신을 파묻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시인은 그 작업을 끝없이 해야 하는 운명에 경악하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 비명과 눈물과 심장을 만든 질료에 대해 책임지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 「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함태숙

강원 강릉에서 태어나 중앙대 심리학과 및 동대학원 임상심리 전공. 2002현대시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가장 작은 신』 『토성에서 생각하기』 『새들은 창천에서 죽다』 『그대는 한 사람의 인류가 있다.

kkumkkumi8@hanmail.net